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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킬 땐 '청와대 품격', 해고할 땐 '하청 직원'…모범 사용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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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새 정부가 들어선 첫해 연말, 두 건의 간접고용 노동자 대량해고가 터졌다. 민간부문에서는 한국지엠 하청 노동자 120여 명이 지난해 12월 31일 일자리를 잃었다. 노조를 만든지 5개월여 만에 원청이 하청업체를 바꾸며 20년 넘게 이어져온 고용승계 관행을 깬 것이었다. 해고자들은 일터였던 한국지엠세종중앙물류센터 안에서 농성하며 복직을 촉구 중이다.

공공부문에서는 개방 시기 청와대에서 일했던 하청 노동자 2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청와대 복귀 결정 이후 6개월여의 시간이 있었지만, 정부는 이들에 대한 고용보장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이에 해고자들은 삼보일배, 관저 앞 1박 2일 농성 등을 이어가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 중이다.

두 사업장의 이야기를 통해 여전히 위태로운 간접고용 노동자의 현실을 살폈다. 둘째 편은 지난 8일 서울 용산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만난 이우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지부 청와대분회장과의 인터뷰다. 편집자

지난해 12월 29일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로 출근했다. 같은 날 개방 시기 청와대에서 일했던 하청 노동자들은 길거리에서 삼보일배를 했다. 이틀 뒤면 공식화되는 해고를 막아달라고 요구하면서였다. 그러나 이렇다 할 고용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지난 8일에는 관저 앞에서 청와대 하청 노동자의 1박 2일 농성도 있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 체포를 요구하며 '키세스단'이 밤을 샌 그 자리에서, 해고자들은 은박 이불을 덮고 밤을 새며 간절한 마음을 전했으나 역시 정부의 입장 변화는 없었다.

당일 농성을 준비 중이던 이우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지부 분회장을 관저 인근에서 만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설립한 청와대재단이 계약한 하청업체에 소속돼 2년여 간 방호직으로 일했던 그 역시 이 대통령의 청와대 복귀와 함께 일자리를 잃었다.

이 분회장에게 청와대에서 일했던 시기의 경험과 이 대통령의 청와대 복귀 결정 뒤 해고되기까지의 일을 물었다. 국가를 상징하는 공간 중 한 곳인 청와대에서 일한 200여 명의 하청 노동자에게 국가가 '모범 사용자'였던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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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일 한남동 관저 앞 청와대 해고자 복직 요구 1박 2일 농성 선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우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지부 청와대분회장. ⓒ프레시안(최용락)



35시간 연속 노동, CCTV 통한 감시…尹 정부 시기 청와대 노동자

"런베뮤가 따로 없었어요." 청와대에서 일할 때의 노동조건을 묻는 말에 이 분회장은 '1년' 심지어 '1개월'식으로 이뤄지던 쪼개기 계약과 함께 장시간 노동 문제를 먼저 꺼냈다. 방호직의 하루 근무시간은 주간직 아침 8시에서 저녁 7시까지 11시간, 야간직 저녁 7시부터 아침 8시까지 13시간이었다. 중간에 주어지는 3시간의 휴게시간에는 임금이 지급되지 않았다.

특히 2024년에는 야간 근무를 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웠다고 이 분회장은 기억했다. 회사의 대응은 사람을 갈아넣는 것이었다. "11시간 일하고, 14시간 일하고, 다시 11시간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합하면 35시간 일했죠."

이뿐이 아니었다. 미관을 이유로 폭염기 야외에서 일하는데도 가림막이나 모자를 지급하지 않아 화상을 입은 동료도 있었다. 비가 내릴 때도 우산 없이 우비에 기대 일했다. 그속에서 경비직 노동자들은 종일 서서 근무했고, 안내직 노동자는 하루 2만 보를 걸었다.

관리자의 감시도 일상적이었다. 방호직의 동선이 CCTV를 통해 체크됐다. 화장실 가는 시간이 좀 길어진다 싶으면 전화로 연락이 오기도 했다. 민원 대응을 명분으로 지급된 녹음기도 종일 켜둬야 했다. 막상 악성 민원에 대한 대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분회장이 청와대를 떠나지 않고 2년여 간 일한 것은 "나라에 보탬이 되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보람 때문이었다. 청와대에서 열리는 여러 국가적 행사에 작게나마 기여하고, 참석한 공무원들에게 '수고하신다'는 말을 들을 때면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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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개방 2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해 5월 9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청와대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일 시킬 땐 '청와대 품격', 불합리 따질 땐 '하청 비정규직'

그러나 그뿐이었다. 35시간 연속 노동, 악성 민원, 감시 등 청와대 노동자들이 겪은 불합리한 일에 대해서는 정부도, 공무원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간접고용 구조로 책임을 흐려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청와대 관람 사업을 처음에 국가유산청이 맡았다 나중에 문체부가 만든 청와대 재단으로 넘어갔어요. 청와대 재단은 용역업체를 통해 사람을 뽑았어요. 과로, 악성 민원 등으로 문제가 생겨도 문체부나 재단이 아닌 업체로 미룰 수 있었던 거죠."

고용구조에 맞춰 관리자들도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일을 시킬 때면 '여기는 청와대다. 품위를 지켜라'며 엄격한 근무 규율을 요구했다. 장시간 노동이나 감시 등 불합리한 일에 항의하면 '너희는 하청 비정규직일 뿐'이라며 듣지 않았다.

참다못한 이 분회장은 2024년 11월 동료들과 함께 노조를 만들었다. "시스템을 갖춘 조직, 상식을 갖춘 조직, 서로 품어줄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싶었다. "가시밭길을 걷더라도 한번 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노조를 만든 뒤 작은 변화가 있었다.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에도 한 벌만 지급하던 근무복이 더 많이 지급되기 시작했다. 전과 달리 관리자들이 노동자들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하는 분위기도 차츰차츰 생기기 시작했다.

더디더라도 조금씩, 노동조건을 개선하며 계속 이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지난해에는 "내년에 아이를 낳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청와대 복귀와 함께 찾아온 해고가 이 분회장의 소박한 꿈을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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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로 첫 출근한 지난해 12월 29일 참모진과 차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李 대통령, 청와대 복귀 결정 반가웠는데…결과는 해고

처음 이 대통령의 복귀가 결정됐을 때만 해도 이 분회장은 반가웠다고 말했다. 대선 공약에서 "노동 존중", "모범 사용자"를 말한 이 대통령이기에 복귀 결정이 대량해고로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 대통령이 모범 사용자란 말을 처음 했을 때 손발이 떨릴 정도로 기뻤어요. '그래 이 말을 듣고 싶었지. 그래서 윤석열을 끌어내린 거잖아'라고 생각했어요. 청와대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도 당연히 돌아와야 한다고, 정말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기대가 무너진 것은 새 정부가 들어서고 두 달여 만인 8월 즈음이었다. 개방 사업 중단과 함께 강제 휴업이 시작됐다. 노동자들은 그 사실을 휴업 실시 2주 전에야 통보받았다. 그 전까지 노동자들에게 고용에 관해 전달된 정보는 없었다.

불안감 속에서도 이 분회장은 대책이 마련될 거라고 믿었다. 이 대통령에게 건 기대 때문만은 아니었다. 업체도 다시 일을 할 수도 있으니 '해외에 나가면 보고하라'고 지시하며 보안서약서도 받았다. 이 때문에 다른 직장을 구하지 않고 복직을 준비했다.

그러나 4개월여 간 일어난 일은 기대를 배반하는 것이었다. 지난해 9월 노조와의 면담에서 대통령실 측은 청와대 하청 노동자에 대한 고용 책임을 문체부에 넘겼다. 문체부는 사업 자체가 종료됐고 재단도 폐업했기에 고용계약은 지난해 12월까지로 끝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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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지부 청와대분회가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종로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보장 촉구 삼보일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프레시안(최용락)



"청와대에서부터 비정규직 문제 해결 의지 보여주길"

이 분회장은 현재 10여 명의 동료와 함께 정부에 고용보장 대책 마련을 요구 중이다. 난점도 있어 보인다. 국회는 지난해 문체부가 편성한 청와대재단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재단 자체가 없어진 상황에서 당장 기존 노동자의 고용처를 마련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이에 노동자들도 사잇길을 찾아 제안했다. 올해 상반기 청와대 관람 재개를 검토 중인 만큼 해당 업무에 기존 노동자를 고용하거나, '원청 사장' 격인 문체부 혹은 관계기관에 결원이 발생하면 채용해달라는 것이 노조 요구의 골자다.

국가가 정책 변화로 일자리를 잃게 된 공공부문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간접고용 구조를 짜뒀다는 이유로 회피하지 말고, 순차적이어도 좋으니 가능한 수준의 대책을 마련해 모범 사용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올해 이후 대화 문을 걸어잠갔다.

이 분회장은 "국가마저 낮은 곳에서 일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대화하지 않는다면 그 목소리는 누가 듣겠나"라며 "그러면 양극화도 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이어 이 대통령이 "집안 문제라 할 수 있는 청와대에서부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여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바라며 이 분회장은 힘이 닿는 한 싸움을 이어가려 한다. 그에게 청와대는 착취와 해고의 공간이 아닌 노동의 가치와 약자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공간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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