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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노력없이 꽃필 수 없다”… ‘로마의 휴일’ 배우 오드리 헵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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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1993년 1월 20일 64세
조선일보

배우 오드리 헵번.


1953년 오드리 헵번(1929~1993)의 첫 주연 영화 ‘로마의 휴일’은 한국에선 전후 복구가 한창이던 1955년 9월 30일 개봉했다.

영화를 소개한 조선일보 기사는 “이 영화에서 오늘 유행하고 있는 ‘헤쁘번 헤어 스타일’이 나왔는데 그것은 소국의 왕녀로 분역(扮役)한 오도리 헤쁘번의 새로운 헤어 스타일을 본따른 것”(1955년 9월 25일자 조간 4면)이라고 전했다.

조선일보

1955년 한국 개봉한 오드리 헵번 주연 영화 '로마의 휴일' 신문 광고. 1955년 9월 30일자 4면.


영화를 상영한 국도극장은 개봉 날 신문에 “아카데미 최우수 주연여우상에 빛나는 ‘오-드리- 헾버-ㄴ’의 절세의 명연기/ 자유를 찾어 방황하는 아름다운 왕녀의 즐겁고 애닲은 청춘의 애수”(1955년 9월 30일자 4면)라고 5단 크기로 광고했다.

헵번은 ‘로마의 휴일’에서 발랄하고 청순한 공주 연기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영화에서 선보인 짧은 커트 헤어 스타일은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헵번은 이후 ‘사브리나’(1954), ‘화니 페이스’(1957),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 ‘마이 페어 레이디’(1964) 등 영화 26편에 출연하며 1950~1960년대 최고 배우로 군림했다.

조선일보

오드리 헵번 '나의 후처기'. 1964년 11월 29일자 4면.


헵번의 사생활에도 관심이 컸다. 헵번이 결혼 생활에 대해 외신에서 밝힌 내용이 그대로 신문 메인 기사로 실릴 정도였다. 첫 남편 미국 배우 멜 퍼레어는 이혼남에 아이가 넷 딸린 남자였다. 헵번은 남편과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다. 결혼 생활은 행복하다고 밝혔다.

“지금 나는 남편인 메루 화라와 다섯 아이에 둘러싸여 행복하게 살고 있다. 진정 이 이상의 행복이란 말을 나는 모른다. 페파, 메라, 크리스토파, 마크- 이렇게 네 아이는 먼저 부인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이다. 사실 나는 결혼 전의 이러한 상태에 아무런 저항도 안 느낄만큼 남편될 사람을 사랑했고 그도 나를 사랑했다.”(1964년 11월 29일 자)

이 기사에서 헵번은 “인생이란 성실과 노력의 지탱 없이 빛나게 꽃필 순 없다”고 했다. 헵번은 그러나 성실한 노력에도 1967년 9월 남편과 별거를 시작했다. 남편 멜 퍼레어가 다른 여배우와 바람을 피운다는 소문이 들렸다.

조선일보

은막의 요정 오드리 헵번. 1967년 3월 30일자 6면.


헵번은 별거 직전까지도 남편과 아이들이 삶의 중심이라고 여겼다. 헵번은 프랑스 언론과 인터뷰에서 “1967년에 있어서의 오드리 헵번의 이미지를 자신은 어떻게 느끼나요?”라는 질문에 남편과 가정을 언급했다.

“37세의 여자. 그중 3분의 1을 영화에 바치는 여자. 영화에서는 보다 나은 주제를 택하려고 노력하지만 판단이 전부 들어맞지 않는 일도 있고, 나머지 생활은 남편, 아들, 가정, 여행, 산책 등 말하자면 인생 그 자체를 위하는 여자.”(1967년 3월 30일 자 6면)

조선일보

14년만에 이혼한 오드리 헵번. 1968년 11월 24일자 5면.


헵번은 끝내 1968년 11월 이혼했다. 이 소식도 메인 기사였다.

“만년 요정 오드리 헵번(39)이 ‘한다, 한다’던 멜 퍼러(51)와의 이혼을 드디어 실천에 옮겼다. 지난 20일 스위스 모르게스 지방법원은 정식으로 그들, 헵번-퍼러 부처의 결혼생활이 14년만에 끝났음을 공식 발표했다.”(1968년 11월 24일자 5면)

헵번은 곧 재혼했지만 이 또한 행복한 결말은 아니었다. 1969년 이탈리아 정신과 의사 안드레아 도티와 결혼하고 아들을 낳았으나 13년만에 다시 이혼했다.

조선일보

2014년 9월 4일자 A26면.


헵번은 만년의 헌신적인 봉사 활동으로 영화보다 더 세계를 감동시켰다. 1988년부터 유니세프 친선대사로서 수단, 에티오피아, 베트남, 소말리아 등을 방문하며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한 구호 활동에 헌신했다.

조선일보

오드리 헵번 별세. 1993년 1월 22일자 16면.


“이 헌신적 봉사에 대한 격려로 미 아카데미상 위원회는 오늘 3월 29일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드리 헵번에게 ‘인도주의상’을 수여할 예정이었으나 그는 기다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1993년 1월 22일자 16면)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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