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또 관세를 꺼내 들었습니다. 이번엔 반도체 품목관세입니다. 그런데 방식이 좀 이상합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반도체 'H200'의 대중對中 수출분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포고문에 서명했습니다. 관세는 '수입품'에 적용한다는 점에서 이상한 포고문입니다. 도대체 트럼프의 속셈은 무엇일까요?
■ 트럼프식 관세 공식 = 답은 간단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수출분에 관세를 부과하는 '이상한 구조'로 보이지만, 사실은 수입품에 관세를 매기는 구조입니다. 엔비디아 AI 반도체 전량이 대만의 TSMC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입'된 후 '재수출'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으로 수입됐다가 다른 나라로 재수출되는 반도체에 25%의 품목관세를 부과하는 포고문에 서명을 한 거죠.
이번 조치는 미 상무부가 지난해 12월 22일 '반도체 수입이 미국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조사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예고됐습니다.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르면 특정 품목과 그 파생제품이 미국의 국가 안보를 해칠 위험이 있으면 대통령은 수입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사 보고서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반도체와 반도체 제조 장비, 관련 파생제품이 미국의 국가 안보를 해칠 위험이 있는 규모와 조건으로 수입되고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미국에 수입되는 반도체가 미국의 안보를 해친다는 거죠.
이를 근거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수입되는 반도체가 미국의 기술 공급망 구축이나 반도체 파생제품의 국내 제조 역량 강화에 기여하지 않을 경우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구실을 포고문에 담았습니다. 사실은 관세 부과를 위해 미 대통령과 상무장관이 손발을 맞춘 셈입니다.
25% 관세 부과 대상은 앞서 언급한 엔비디아의 'H200'과 AMD의 'MI325X'입니다. 주목할 건 트럼프 대통령이 포고문에 그동안 미뤄왔던 반도체 관세 부과를 본격화할 뜻을 밝혔다는 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의 수입 조정 조치에는 무역 대상국들과의 협상과 관세가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을 포고문에 담았습니다. 그동안 트럼프는 반도체에도 관세를 도입할 것이라고 예고해왔는데, 이번을 계기로 대대적인 반도체 관세 도입을 공식적으로 밝힌 셈입니다.
특히 백악관은 팩트시트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가까운 시일 내에 미국 내 제조를 유도하기 위해 반도체와 그 파생제품 수입에 더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할 수 있으며, 이에 상응하는 관세 상쇄 프로그램을 도입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더 다양한 품목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 상호관세와 품목관세 = 그러자 한국에도 불똥이 떨어졌습니다. 반도체는 대미對美 3대 수출 품목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포고문이 발표된 직후, 미국 출장 중인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귀국을 연기하고 곧장 진상 파악에 나섰습니다. 그는 현지 한국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 뭐라고 섣불리 말하기는 어렵다"면서 "본부와 업계가 협업하면서 분석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핵심광물 수입이 미국 안보에 부합하도록 교역 대상국들과의 협상 개시를 지시하는 내용의 포고문에도 서명했습니다. 협상 결과에 따라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가 특정 핵심광물의 최소 수입가격을 설정하는 등의 조치를 검토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고문에 담았습니다. 핵심광물에도 품목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거죠.
과연 트럼프의 관세 부과 조치는 어디까지 닿을까요? 현재 미국은 크게 두가지 근거에 따른 관세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해 모든 국가별로 차등적으로 부과하는 '상호관세'입니다. 다른 하나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수입 품목별로 부과하는 '품목관세'입니다.
지난 5일 차세대 GPU를 선보이고 있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사진 | 뉴시스] |
트럼프 대통령은 '표①'에서 보는 것처럼 품목관세를 계속 늘려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상호관세는 미국 대법원에서 적법성 여부를 다투는 중인데, 미 대법원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하면 상호관세는 무효가 됩니다. 이에 따라 한미 간에 맺은 관세·투자 협정도 영향을 받을 수 있죠.
그래서 일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대법원의 위법 판결이 있더라도 다양한 품목관세로 대체하겠다는 걸 보여준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옵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명령에 따라 부과된 관세는 일절 환급되지 않는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상호관세 판결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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