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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어때] 모든 걸 있는 힘껏 사랑하고 싶어진다, 영화 ‘리틀 아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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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179번째 레터는 14일 개봉한 영화 ‘리틀 아멜리’입니다. 지난해 칸 영화제 특별 상영 부문에서 처음 공개된 프랑스 애니메이션이에요. 며칠 전 골든글로브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케데헌’과 함께 후보에 오르기도 했고요. 영화를 보고 나서 그날 잠들 때까지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모든 걸 볼 수 있지만 아는 건 하나도 없는 세 살’ 아멜리가 안내하는 순수의 정원에 들어가봤으니까요. 그 정원에 이별이 매복하고 있었다는 걸 몰랐던 아멜리. 상영 시간 77분, 딱 77분 후에 여러분도 미소지으며 극장을 나오시게 될 거에요. 당돌하고 똘망똘망한 아멜리를 만나기 전에 원작자인 벨기에 작가 아멜리 노통브를 아시면 좋은데, 그녀에 대해서도 이번 레터에서 살짝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왜 일본이 배경인지, 아멜리 노통브의 실제 삶을 아시면 바로 이해가 되실 거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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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아멜리'의 주인공 아멜리는 파워당당 세 살입니다. 얼마나 귀여운지, 직접 보시면 반하실 걸요./영화사진진


세 살 때를 기억하시나요. 그때 누굴 만났지, 무얼 봤는지, 처음 먹은 초콜릿 맛은 어땠는지 등등. ‘리틀 아멜리’는 주인공 아멜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초콜릿을 처음 먹고 환호하는 장면, 참 예쁩니다). 관객은 아멜리가 태어나기도 전, 자신을 신이라고 부르는 튜브 상태의 아멜리를 먼저 만납니다. 왜 튜브냐면, 아기 아멜리는 먹고 배설하는 통로로 자신을 가장 먼저 인식하거든요. 음식이 들어왔다가 나가는 통로, 즉 튜브 상태인 아기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관심 없죠. 욕망도 결핍도 없는 상태, 그래서 신입니다.

‘리틀 아멜리’는 이 아기가 태어나 세상을 알게 되고 인간이 되면서 겪는 세계를 보여주는데, 그 화폭이 몹시도 아름답고 환상적이에요. 이래서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져야지, 싶었네요. 커다란 눈에 오동통한 발목, 천진하면서도 고집스러운 아멜리. 영화는 아멜리의 1인칭 시점에서 설명되는데, 언어가 불어에요. 저는 불어를 전혀 모르는데 오히려 좋았습니다. 언어로 입력되는 게 아니라 음악처럼 들려서요. 아기 목소리가 봉주르봉수와쥬뗌므싸바싸바멜씨 몽글몽글 옹알이처럼 이어지는 기분 좋은 ASMR 같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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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아멜리'의 주인공 아멜리에게 사랑과 이별을 가르쳐준 소중한 사람 니시오상(왼쪽)./영화사진진


‘리틀 아멜리’는 원작인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을 쓴 작가 아멜리 노통브(60)의 기억을 그대로 반영했어요. 외교관이던 부친이 일본 주재 대사로 부임하면서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거든요. 아멜리의 오빠 앙드레, 언니 쥘리에트 이름도 작가의 실제 오빠언니 이름입니다. 오빠 앙드레는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살았다고 하네요.

‘리틀 아멜리’의 아멜리에게 평생 남을 따뜻한 사랑을 알게해준 사람은 일본인 유모 니시오상이었습니다. 니시오상은 아멜리를 ‘아메짱’이라고 부르며, ‘아메’가 일본어로 비(rain)라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비 내리는 장면이 자주 나와요.

니시오상이 아멜리에게 한자로 ‘비 우(雨)’자 쓰는 법을 가르쳐주는 장면도 참 애틋해요. 니시오상이 아멜리의 작은 손가락을 잡고 창문에 ‘비 우(雨)’ 자를 쓰는 것처럼 그리거든요. “가로줄은 하늘이야. 열린 네모를 그리고 하늘에서 땅으로 선을 그어. 끝으로 물방울 네 개를 찍으면, 이게 아메야. 비를 뜻하는 글자.” 다 그리고 나서 창문에 입김을 불면 정말로 비 우 자가 보이는데 이때 놀라는 아멜리의 눈망울. 보는 제가 다 뿌듯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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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에서 회화적으로 강조된 아멜리의 커다란 눈망울은 말없이도 감정을 전합니다./영화사진진


세상에 눈을 뜨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라 그런지 일본에서 보낸 시간이 그녀의 문학에 여러 번 등장합니다. 1999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문학상을 받았던 소설 ‘두려움과 떨림’ 아멜리 노통브가 일본 회사에 다닌 경험으로 썼고, 20대에 일본인 청년을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결국 헤어진 이야기로 소설 ‘아담과 이브도 없는’도 썼어요.

일본에서 일본 학교를 다녔고, 일어도 잘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아멜리 노통브에게 일본은 여러 색깔을 가진 나라였던 것 같습니다. ‘두려움과 떨림’ 서평을 찾아보니 문학평론가 김미현 교수가 “맞아죽을 각오가 필요없을 정도로 잘 쓴 일본 비판소설. 제도나 조직의 불쾌한 사디즘에 저항하는 유쾌한 마조히즘의 정수”라고 했네요. 무작정 일본이라고 미화하진 않는 작가라는 거죠.

그런 면에서도 일부 관객이 비판하는 ‘전범 국가 코스프레’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전쟁 범죄를 미화하려는 이야기가 전혀 아닙니다. 등장 인물이 원폭으로 가족을 잃은 일본인이고 그 상처를 잊지 못하고 있는 걸로 그려지면 ‘전범국가 코스프레’가 되는 걸까요. 이렇게 잘 만든 애니메이션이 ‘평점 테러’를 당하고 있다니, 미리 오해 마시고 직접 보시고 판단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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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로 '아메'가 '비'라는 사실을 배우고, 한자로 비 우 자 쓰는 법을 배우게 된 아멜리. 입김을 불어 창문에 쓴 비 우 자를 바라보며 뿌듯해하고 있습니다./영화사진진


니시오상은 아멜리에게 이별을 가르쳐준 사람이기도 했어요. 튜브에 지나지 않던 생명체였던 아멜리가 인간으로 자각하기 위해 거쳐야만 했던 고통이었죠. 눈물 없던 세계를 떠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아픔. 아멜리는 말합니다. “세상은 슬퍼요. 전부 잊히고 지워져요. 니시오상과도 이 산과도 헤어져야 하니까. 이 정원에서 나가야 하니까. 받은 건 다시 빼앗기니까.” 슬퍼하는 아멜리에게 할머니가 말해줍니다. “아니야, 추억은 남는단다.”

세 살이 감당하기 어려웠던 통증을 처음 겪고 아멜리는 말합니다. “세 살이면 모든 걸 볼 수 있지만 아는 건 없어요. 제비가 몇 마리 와야 봄이 온 걸까요. 상처도 태양 아래에서 눈 녹듯 사라질까요.” 스스로의 물음에 대한 아멜리의 씩씩한 답변. “나의 니시오상, 나의 태양. 어디를 가든 당신과 보낸 시간을 마음에 간직할게요. 모든 걸 보고 느끼고, 힘껏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한 장씩 열심히 써갈게요. 그래요, 난 신은 아니지만 날 믿으세요. 그게 훨씬 즐거우니까.” 세 살 아멜리가 주는 즐거운 위로와 용기를 극장에서 만나보세요.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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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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