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는 온전히 나를 위한 회복의 시간입니다. 일상에 지쳐 쉬는 방법을 잊은 당신에게, 경향신문 여성 기자들이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의 일상을 공유하는 [퇴근 후, 만나요]를 연재합니다. 누군가의 사소한 일상이 영감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퇴근 후, 만나요] 갈비뼈를 닫다 보면, 세상이 고요해진다
갈비뼈를 닫으세요, 정수리를 하늘 위로 뽑아볼까요, 척추를 하나하나 쌓아보세요…. 마치 ‘필라테스 괴담’처럼 SNS를 떠도는 이런 표현들이 한창 생소할 때 필라테스를 처음 접했다. 아마도 2017년쯤, 내년이, 한 달 뒤가, 당장 내일이 온통 불안하기만 한 취준생 시절이었다. 그래도 월수금 오전 8시면 출근하는 사람들을 거슬러 필라테스 센터에 갔다. 싫증이 밥 먹듯 나는 사람치곤 꾸준했다. 몇 시에 잤든, 배가 고프든, 눈이 오든 갔으니까.
그 후로 필라테스엔 ‘쉼표’는 있어도 ‘마침표’는 없었다. 테니스, 웨이트, 러닝 등 온갖 운동을 전전하다가도 필라테스로 돌아가곤 했다. 퇴근 후 취재원이나 부장 전화에 허겁지겁 수업을 뒤로하고 나오는 날들이 많을 때면 수강료를 필라테스 센터에 기부한 셈 치고 한동안 발길을 끊기도 했다. 그래도 이내 필라테스가 다시 생각났다. 1시간 바짝 하고 나면 온몸 구석을 자근자근 씹어준 듯한 개운함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필라테스 기구인 리포머와 바렐 |
‘그게 운동이 되긴 하냐’는 질문을 흔히 마주하는 필라테스는 사실 조셉 필라테스 할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때 포로수용소에서 고안한, 나름 거친 환경에서 탄생한 운동이다. 원래 이름은 ‘컨트롤로지(Contrology)’. 그러니까 몸에 대한 완벽한 조절을 목표로 하는 운동이랄까. 예컨대 갈비뼈를 닫는다는 건 ‘호흡을 내뱉고 복사근을 개입 시켜 몸통 안정성을 높이도록 조절하세요’란 말이다. 대부분 필라테스 동작은 유연성이나 힘보다 정확하고 미세한 ‘컨트롤’을 강조한다.
정교한 컨트롤 능력이란 건 달리기나 웨이트처럼 ㎞, ㎏ 단위로 보이지 않으니 가끔 환장할 노릇이다. 배를 집어넣으면 목이 앞으로 튀어나오고, 목을 똑바로 세우면 어깨가 솟아오르고. 고장 난 목각인형처럼 아주 난리다. 온몸 구석구석 정렬을 짚어주는 선생님 말을 따르다 보면 땀이 뻘뻘 난다. 그래도 어느 날 필라테스의 꽃이라 불리는 ‘티저’(상체와 다리를 들어 몸을 V자로 만드는 동작)를 그럴듯하게 해냈을 땐 뿌듯했다. 보이지 않는 속근육도 성장하긴 하는구나. 2주만 쉬면 도루묵이 되긴 하지만 말이다.
컨트롤로지 루틴 |
필라테스가 좋은 점은 성취감 말고도 또 있다. 내 몸에 있는지도 몰랐던 근육을 어떻게든 조절해보겠다고 집중하다 보면 세상이 고요해진다. 일할 때면 야단법석 요란한 세상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인데, 퇴근해도 요란함을 떼어내지 못하는 듯한 게 늘 별로였다. 일과 일상을 적당히 분리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그래야 오래 건강하게 일할 수 있다고 하는 숱한 조언에도 마음처럼 안 됐다.
필라테스를 하면 자연스레 가능해진다. 갈비뼈를 닫고, 어깨를 끌어내리고, 척추를 하나씩 쌓아 올리려면 세상의 요란함이, 온갖 잡념이 끼어들 새가 없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도, 다가올 일에 대한 걱정도 아닌 오롯이 지금,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동작에 맞춰 마시고 내쉬고 호흡까지 하다보면 더할 나위 없다. 돌아보면 취준생 때도 ‘현생’의 밀려오는 불안을 피하려고 필라테스 수업을 열심히 찾았나 싶다.
“컨트롤로지는 몸과 마음, 영혼의 완전한 조화다”. 그 시절 83세까지 산 필라테스 할아버지가 남긴 명언 중 하나다. 몸을 컨트롤하는 걸 연습하다 보면 마음도 다스릴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건강한 몸은 마음, 영혼과 연결돼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멋모르고 시작한 필라테스, 얼떨결에 창시자 할아버지의 의도에 가까이 가게 된 걸까. 잘 먹고, 잘 자고, 스트레스 없이 산다는 게 누구에게도 만만치 않은 현실을 뒤로하고 이번 주말 아침에도 간다. 갈비뼈를 닫으러!
간식대장.
경향신문 기자. 세계 평화를 바라는 ISFJ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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