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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곳간 채우는 과징금 대신 ‘피해구제기금’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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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도승 개인정보보호법학회장(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 지난 1월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해결책으로 개인정보 피해구제기금 신설을 설명하고 있다. 징수받은 과징금을 정부 예산으로 귀속하지 말고, 피해 배상과 보안강화의 재원으로 쓰자는 제언이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과징금은 쌓여가는데, 왜 피해자는 제대로 배상받지 못하는가.’



최근 에스케이텔레콤(SKT), 케이티(KT), 쿠팡 등 대형 기업들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기업에 물리는 과징금은 수천억대로 치솟았지만, 정작 피해자들은 ‘빈손’이다. 일부에서는 기대하는 집단소송조차 사법 체계의 벽이 높아 ‘희망고문’으로 끝나기 일쑤다.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김도승 개인정보보호법학회장(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런 난점의 해법으로 ‘개인정보 피해구제기금’ 신설을 제시했다. 개인정보 유출로 기업에 징수받은 과징금을 정부 예산으로 넣지 말고, 피해 배상과 보안 강화의 재원으로 쓰자는 혁신적인 제언이다.



―왜 ‘기금 조성’이 필요한가?



“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부는 막대한 과징금을 때리고, 국민은 소송에 나선다. 하지만 결과는 허망하다. 과징금은 전액 국고로 들어가 정부 곳간만 채우고, 피해자들은 수년 간의 소송 끝에 고작 몇십만 원의 위자료를 받거나 패소한다. 이는 국민에 대한 ‘두 번의 배신’이다. 디지털 사회의 위험이 일상화된 시대라면, 이제는 사고 발생 시 국가가 과징금을 활용해 선제적으로 국민을 구제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미국 법원에 소송을 내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나?



“현실적으로 ‘희망고문’에 가깝다. 미국 법원에는 자국에서 재판해야 하는 실효성을 묻는 ‘불편한 법정의 원칙(FNC)’이 있다. 한국법이 적용되는 한국내 사고를 미국에서 재판해달라고 하면 각하될 가능성이 99%다.”



김 교수는 국내 소송도 한계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손해배상은 피해자가 ‘정보 유출과 실제 재산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직접 입증해야 하는데 이는 거의 불가능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결국 법원은 정신적 위자료로 10만원 정도만 인정하며, 그마저도 소송에 직접 참여한 사람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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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30일 국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가 발언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미국식 집단소송제를 국내에 도입한다면?



“도입한다 해도 법원이 적극적으로 허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오랜 진통 끝에 2005년 증권 분야에 도입된 집단소송 조차 활용도가 극히 낮고, 실질적인 효과가 미미해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교수는 피해구제기금은 피해 보상뿐 아니라 사회적 보안 역량을 끌어올리는데도 활용할 수 있다며. 구체적인 활용 방안을 예시했다. 첫째, 신속한 피해 구제다. 미국 티(T)모바일 사건처럼 일반 피해자에게 3만~5만원 정도를 신속하게 배상하고, 실제로 피해가 심한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금액을 지급할 수 있다. 둘째, 2차 피해 예방이다. 유출 즉시 5년 정도의 ‘신용 모니터링 프로그램’이나 보안 패치를 제공하는 것이 훨씬 실효적이다.



​셋째, 중소기업 보안 지원이다. 자금력이 부족해 보안 투자를 못 하는 중소기업의 역량을 기금으로 지원해 전체적인 보안 수준을 상향 평준화한다. 넷째, 정부의 구상권 행사다. 기금에서 피해자들에게 먼저 배상하고 소송권을 위임받아 정부가 기업을 상대로 구상 소송을 진행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국가를 상대로 싸워야 하기에 훨씬 큰 압박을 느끼게 된다.



또한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보위) 강화를 강조했다. 김 교수는 “2026년 개보위 예산은 729억 원으로 예상되는 과징금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기금이 신설되면 개보위 산하에 ‘개인정보 보호원’ 같은 전문 기구를 설립해 기술적 지원을 전담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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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자영업자와 정치인,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모여 ‘자영업 말살하는 쿠팡 규탄 대회’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기금 조성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은?



“기획예산처의 반대다. 모든 수입을 통합 관리하려는 기획예산처는 ‘재정 칸막이’가 생기는 것을 특히 싫어한다. 하지만 개인정보 과징금은 단순한 행정제재가 아니라 ‘국민 신뢰를 저버린 대가’다. 이미 전력산업기반기금, 식품진흥기금, 언론진흥기금 등 법위반 과징금을 재원으로 하는 기금은 여럿이다. 고도화된 디지털사회에서 개인정보 유출은 사회적 재난이다.”



김 교수는 인터뷰를 마치며 경고성 조언을 남겼다. “디지털 편익의 대가로 유출 위험을 안고 사는 시대에 기업만 때리는 방식은 한계에 다다랐다. 징벌의 결과를 구제와 재투자로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지 못하면, 우리는 대규모 유출 사고 때마다 똑같은 무력감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쿠팡 사건을 종결점은 기금 신설이 돼야 한다. 기획예산처의 입김을 고려하면 쿠팡 사건으로 정부와 국회의 의지가 선명한 이번 기회를 놓치면 기금 신설은 앞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정은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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