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

영하 10도에 쉴 곳 없는 노동자들…‘한파 휴식권’은 “검토 중”[점선면]

댓글0
점(사실들) : 늘어나는 이동노동자·새벽 쉼터
선(맥락들) : 폭염엔 ‘쉬는 법’, 한파에는 없다
면(관점들) : 한파 속 노동자 보호, 이제 출발선
경향신문

갑작스러운 폭설이 내린 지난해 2월6일 시민들이 눈을 맞으며 서울 세종로 사거리 인근을 지나고 있다. 문재원 기자


“형님들 이동노동자 쉼터 모르시는 분 없죠? 추울 때는 쉼터 위치 표기해놓는 게 좋아요. ‘콜사’(주문이 줄어 ‘콜이 사망했다’는 뜻의 은어)라 길에서 벌설(대기할) 때 요긴합니다.”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졌던 지난 2일, 배달노동자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입니다. 이동노동자 등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한파를 피해 쉴 곳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카페나 상가 등 다른 공간에서는 눈치를 보느라 오래 머물 수도 없고요. 이에 최근 지방자치단체(지자체)들은 이들의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쉼터를 늘리고 있는데요. 적은 수와 떨어지는 접근성 때문에 이용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점선면 취재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한파 휴식권’ 입법도 검토 중입니다. 폭염과 달리 한파는 휴식을 보장받을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인데요. 그 결과 폭설·한파시 휴식은 기업의 자율적인 판단과 권고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왜 한파 쉼터가 생기고 있는 걸까요? 한파 휴식권은 꼭 필요한 걸까요? 오늘 점선면이 정리했습니다.

경향신문

배달노동자들이 2022년 12월 쌍문동의 한 마트 물류창고에서 다음 주문이 올 때까지 대기하고 있다. 강은 기자


점(사실들): 이동노동자·새벽 쉼터 늘고 있다


최근 지자체들이 앞다퉈 조성하는 이동노동자 쉼터는 대리운전·퀵서비스·배달·수리 등 이동하며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휴게공간입니다. 쉼터에는 커피, 안마기, 휴대전화 충전기 등이 비치돼 편의를 제공하는데요. 서울시에는 총 30곳이 있고, 전국적으로 설치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서울에는 일용직·건설노동자 등 새벽 시간 야외에서 대기해야 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새벽 일자리 쉼터’도 있습니다. 지난해 서울시가 관련 예산을 삭감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지난해 10월 김민석 국무총리가 이를 두고 “왜 그렇게 어리석나”라고 지적하자 서울시는 “중단하지 않는다”고 반박했습니다. 실제로 점선면 취재 결과 서울시는 올해 해당 예산을 2억5300만원으로 오히려 증액 편성했다고 밝혔고요. 서울시 관계자는 “(증액에) 작년 이슈가 좀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경향신문

김민석 국무총리가 지난해 10월10일 서울 구로구 남구로 새벽인력시장을 찾아 근로자들에게 떡을 나눠주고 있다. 연합뉴스


선(맥락들): 폭염엔 ‘쉬는 법’, 한파에는 없다


한파 속 노동자들을 위한 쉼터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플랫폼 노동자의 급증이 있습니다. 플랫폼 노동자는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일거리를 제공받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들을 말하는데요. 코로나19 유행 이후 급증해 2023년 88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이들은 폭염·한파에 그대로 노출된 채 일하지만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법적 휴식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합니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폭염 휴식권’(체감온도 33도 이상 폭염시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 의무화)도 이동노동자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기후를 이유로 플랫폼 노동자가 스스로 업무를 중단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이동노동자 커뮤니티에는 궂은 날씨에 배차를 거부했는데 불이익을 받느냐는 질문이 반복해서 올라오는데요. 실제로 지난해 9월 민주노총은 작업중지를 한 노동자에게 사업주가 불이익 처우를 내리는 경우가 있다며, 작업중지권 사용 범위를 기후위기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파 속에서 콜을 기다려야 하는 노동자에겐 쉼터가 유일한 피난처인 셈입니다.

여기에 기습 한파가 갈수록 잦아진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북극이 따뜻해지면서 북극 한파가 한반도로 내려오는 일이 빈번해졌습니다. 이는 겨울 기온의 변동 폭을 키웁니다. 질병관리청은 “갑작스러운 추위에는 인체가 온도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워 한랭질환 위험이 커진다”며 야외활동 자제를 권고하는데요. 애초에 야외 노동이 전제된 노동자들에게는 적용되기 어렵습니다.

경향신문

2022년 경기도 포천시의 한 비닐하우스 농장 인근 폐쇄된 이주노동자 농막 기숙사 내부 모습. 포천 | 성동훈 기자


면(관점들): 한파 속 노동자 보호, 이제 출발선


한파에 취약한 노동자는 플랫폼 노동자뿐이 아닙니다. 정부의 관리·감독이 미흡한 소규모 사업장이나 사업주·기업의 보호조치가 부족한 현장에서도 피해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2020년 12월 영하 17도 한파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잠을 자다 숨진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헹씨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지난해 9월 재판부는 사업장이 건강검진을 한 번도 실시하지 않았는데도 정부가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다며 유족에게 배상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실내에서 일한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지난해 일부 대형 백화점에서는 고객이 입장하는 영업시간 전까지 난방을 제대로 틀지 않아 직원들이 추위에 떨어야 했습니다. 일부 매장의 실내 온도는 6.8도까지 내려갔습니다. 보건복지부가 권고하는 겨울철 적정 실내 온도 18~20도가 지켜지지 않은 겁니다. 화재 위험 때문에 난방기구를 설치하기 힘든 재활용 선별장 같은 현장도 있습니다.

경향신문

밤사이 서울 동북권 및 서북권 지역에 한파주의보가 발효된 8일 인천 강화군 동막해수욕장 바다가 얼어 있다. 강화 l 문재원 기자


기후위기에 취약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도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2026년 업무보고에서 한파특보 발령 시 작업시간대 조정 등 한랭질환 예방을 위한 보호조치 강화 계획을 밝혔습니다. 지난해 6월부터는 폭염·한파 속 장시간 작업함에 따라 발생하는 건강장해로부터 사업주의 보호조치 의무를 담은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 중이고요.

장기적으로는 사업주의 보호조치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기 위해 한파 휴식권 법제화도 검토 중입니다. 고용노동부 한 관계자는 점선면과 통화에서 한파 휴식권에 대해 “아직 의견을 수렴하고 검토 중에 있다”며 “우선은 한파에 의한 한랭기 질환 예방접종 등 가이드가 현장에서 적용되도록 권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무엇보다 변덕스러운 기후변화에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요구됩니다. 새벽 일자리 쉼터 예산은 사실상 이슈에 따라 삭감과 증액 여부가 결정됐는데요. 조례 등을 통해 명확한 편성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쉼터 이용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조치들도 보완돼야 하고요. 노동자들의 실제 근무시간대를 반영한 난방 가이드라인도 마련돼야 합니다.

최혜인 노무사는 통화에서 “한파 때문에 계속 사람이 죽는데 관심이 부족한 것 같다”며 “법 하나 개정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닐 테고 노동자들을 위한 종합적인 한파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는데요. 당장 올해도 칼바람이 심상치 않습니다. 한파에 노동자를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의 철저하고 빈틈없는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나를 보더라도 입체적으로” 경향신문 뉴스레터 <점선면>의 슬로건입니다. 독자들이 생각해볼 만한 이슈를 점(사실), 선(맥락), 면(관점)으로 분석해 입체적으로 보여드립니다. 매일(월~금) 오전 7시 하루 10분 <점선면>을 읽으면서 ‘생각의 근육’을 키워보세요.

<점선면>의 다른 뉴스레터가 궁금하시다면 구독을 눌러주세요! ▶ https://buly.kr/AEzwP5M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주요뉴스

해당 언론사로 연결

이 기사를 본 사람들이 선택한 뉴스

  • 전자신문송언석 “세제 개편안 발표에 주식시장 100조 증발…국민 분노 커진다”
  • 중앙일보송언석 "세제개편안 발표 뒤 코스피 100조 증발…국민 분노 커져"
  • 아이뉴스24정청래 "검찰·언론·사법개혁 특위 즉시 가동…추석 전 완수"
  • 프레시안전남도, 난임부부 원거리 이동 시 교통비 지원…회당 최대 20만원까지
  • 머니투데이김병기 "폭우로 또다시 피해…신속한 복구·예방대책 마련"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