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의원연맹 회장인 주호영 국회부의장과 한일의원연맹·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9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를 예방, 기념 촬영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한국 의원들을 만난데 이어 자신의 고향인 나라시에서 13일부터 이틀간 이재명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연합뉴스 |
이재명 대통령이 13일부터 이틀간 일본 나라(奈良)현을 방문,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와 회담을 합니다. 양국 정상 간 셔틀 외교가 본격화하는 것인데, 비상한 시기에 열려 주목받고 있습니다. 미·중간 대결이 구조적으로 심화되는 가운데 중·일 갈등도 심상치 않습니다. 동북아 정세의 불안정 지표가 급상승하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은 중국 방문 1주일 만에 일본을 찾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經濟新聞, 이하 닛케이)이 8일 뜻밖의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다음 달 22일 시마네현이 주최하는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날’ 행사에 다카이치 총리가 더 큰 국익을 위해 신중하게 판단하라고 조언한 겁니다.
100년 넘은 닛케이 칼럼 ‘다이키쇼키’
닛케이 8일 자 17면의 고정 칼럼 ‘다이키쇼키’(大機小機)에는 ‘일한, 미들파워 연대 중요성’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습니다. ‘투자 2’ 면에 게재되는 다이키쇼키는 100년 넘은 익명 칼럼으로 외부 인사들의 주장이 필명으로 게재됩니다. 2021년 4월 “일본은 어느새 후진국이 되었다”는 내용으로 일본 안팎에서 주목받았던 바로 그 칼럼입니다.
이 칼럼은 “이재명 한국 대통령이 조만간 일본을 방문해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고향인 나라시에서 정상회담을 갖는다”며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내각 이래의 한일 셔틀 외교는 착실하게 궤도에 오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중·일 관계가 악화된 가운데 앞으로의 대중(對中) 관계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도 한일의 제휴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했습니다. 대미 관계에선 조선 분야 등에서 한일 간의 역할 분담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이런 정세를 반영해 이 대통령은 기존의 반일 카드를 봉인하고 실용 외교를 내세워 일한 관계 중시의 자세로 돌아서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일본경제신문(닛케이) 8일자 17면의 고정 칼럼 ‘다이키쇼키’(大機小機)‘에 ‘일한, 미들파워 연대의 중요성’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이 칼럼은 다카이치 총리가 다음달 시마네현이 주장하는 '다케시마의 날'과 관련, 국익을 넓게 보고 한일관계를 해치지 않는 대응을 하라고 촉구했다. |
‘다케시마의 날’ 앞두고 경고
이 칼럼은 최근 미국과 중국의 움직임을 언급 후 긴밀한 한일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양자 외교에서 양측의 국민 정서가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만 양국의 안보 환경,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 환경은 더욱 중요하다. 한일 간에는 국민 감정을 자극하는 복잡한 문제들이 있다고 하지만 지금은 거기에 사로잡혀 있을 상황이 아니다.”
이 칼럼은 “신경 쓰이는 것은 2월 22일 다케시마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양국에는 말 그대로 목구멍에 박힌 뼈이며 국경 문제는 아무도 득을 보지 못한다”며 이런 주문을 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의 ‘암반 지지층’은 허락해 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현실주의자의 정치가로서의 다카이치 총리는 보다 고도의 차원에서의 판단이 요구된다.”
다케시마의 날은 일본 시마네현이 2005년부터 매년 주최하며 한국 영토에 대해 잘못된 주장을 하는 행사입니다. 시마네현은 정부가 이를 주최하고, 각료급이 참석할 것을 요구해 왔는데 다카이치 총리가 이에 응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 겁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차관급인 정무관을 행사에 보내왔습니다. 올해는 다카이치 총리가 각료급을 보낼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습니다. 그가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과정에서 다케시마의 날 각료 출석 입장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다이키쇼키 칼럼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올해 초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을 구속했다. 국제 정세의 혼미는 필연적일 것이다. 지금은 국익을 넓게 보고 대응해야 한다.” 닛케이가 비록 사설을 통해서 강한 주장을 펼친 것은 아니지만, ‘국익을 넓게 봐야 한다’며 독도 관련 정책에 대해 신중론을 편 것은 우경화하는 일본 사회에서 이례적입니다.
아베의 대한 수출 규제 때도 닛케이가 나서
닛케이가 이런 칼럼을 게재한 것은 2026년의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어느 때보다 심각하고, 한일 관계가 기로에 서 있다고 판단했기때문일 겁니다. 닛케이가 한일 관계의 중요한 시기에 목소리를 낸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가장 최근으로는 2019년 7월 아베 신조 정권이 한국을 상대로 반도체 소재 3개 품목 수출 규제를 전격 단행했을 때도 닛케이는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했습니다. 당시 일본 언론 전반에서 아베 정권의 조치는 “자유무역에 역행한다”는 우려가 제기됐고, 아사히·마이니치 신문도 한일 양국 경제에 타격을 준다는 보도를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닛케이는 한발 더 나아갔습니다.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아베 정권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주도하고 유럽연합(EU)과 경제동반자협정(EPA)을 맺으며 자유무역을 지키는 일정한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이번 대한(對韓) 수출 규제는 일본의 기존 노력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설에서 일본 정부에 한국이 제기한 징용 문제에 대한 ‘대항 조치를 자제하라’는 내용의 사설을 게재했습니다. 이 사설은 “징용공 문제에 대해 통상 정책을 가지고 나오는 것은 (우리 측) 기업에 대한 영향 등 부작용이 커 긴 안목에서 볼 때 불이익이 많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이번 조치로 전 세계에) 일본발(發) 공급 쇼크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도 했습니다. 세계경제 악화를 가속화하는 주범으로 일본이 지목되는 상황을 맞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미국과 동맹을 맺는 나라끼리 계속 각(角)을 세우는 것은 안보 협력에도 불안감을 남긴다”고 지적 했습니다. 이후 지난 6년을 돌이켜 보면 이는 타당한 비판이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9년 7월 아베 신조 일본 내각의 반도체 부품 등에 대한 수출규제와 관련한 대응책을 찾기 위해 도쿄를 6일간 방문후 12일 서울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연합뉴스 |
이재용 회장 2019년 닛케이 회장 만나 조언 요청
2019년 7월 일본의 대한 수출 규제 직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이 닛케이를 찾아가 회장을 비롯한 수뇌부를 만난 것은 일본 사회에서 닛케이의 비중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회장은 당시 일본의 반도체 관련 수출 규제가 삼성전자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자 급히 도쿄를 방문했습니다. 도쿄에서 미쓰비시, UFJ 파이낸셜그룹 등 3대 대형 은행 회장들을 만나고, 닛케이 회장도 만나 아베 정권의 기류를 파악하고 대응책 마련을 위한 조언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때 도쿄 지국장이던 저는 이 회장이 다녀간 후, 뒤늦게 이 면담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새해 벽두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에 따른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에 이어 덴마크령 그린란드 지배 움직임으로 전 세계가 큰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유럽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비롯한 전통적인 동맹도 트럼프에겐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기반으로 한 서반구 ‘세력권 정치’를 강화하려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배경하에 트럼프는 7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중국의 대만 공격 가능성에 대해 시진핑 주석이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여긴다”며 “무엇을 할지는 그가 결정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너무 나갔다고 생각했는지 “나는 시 주석이 그것(침공)을 하면 기분이 매우 나쁠 것이라고 그에게 얘기했다”고 했지만,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었습니다.
제게 트럼프의 이 발언은 “김정은은 한국을 북한의 일부로 여긴다. 무엇을 할지는 그가 결정할 일”로 들렸습니다. 일본인들에게 이 발언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오키나와는 시 주석이 결정할 일”로 들렸을 겁니다.
한일 모두 오랜 동맹국의 대통령을 믿기 어렵고, 최근 눈에 띄게 힘이 붙은 인접국의 최고 지도자는 “올바른 선택을 하라”고 을러댑니다. 이런 시기에 동북아에서 힘을 합쳐야 하는 나라는 자연스럽게 한국은 일본, 일본은 한국이라는 판단이 나옵니다. 일본이 좋고, 싫고를 떠나서 제도, 가치관, 민주주의에서 공통점이 가장 많기 때문일 겁니다.
다카이치는 총리가 되기 전에는 ‘야스쿠니 매니아’로 한국에 깊이 박힌 일제 시대 상처를 들쑤셨지만, 총리가 된 후에는 자제하고 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가 야스쿠니 문제에 이어 독도 관련 사안에서도 닛케이의 고언에 귀를 기울일지 주목해보겠습니다.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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