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8일(현지시간) 시위대가 교차로를 점거하고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AP 연합 |
이란 군부가 10일(현지시간) 시위 격화 속에 전략적 인프라 보호를 선언했다. 시민들에게는 ‘적들의 음모’를 저지할 것을 촉구했다.
이란 내 시위가 지난 이틀 동안 급격히 고조되고, 보안군과 시위대 간에 심각한 충돌이 빚어진 가운데 이런 선언이 나오면서 시위를 강경 진압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란군은 이란 정권이 수년 만에 가장 심각한 국내 위협에 직면한 가운데 전략적 자산 보호를 선언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라는 외부의 위협, 물가 폭등에 따른 국내 민심 이반 속에 벌어진 전국적인 반체제 시위 속에 이란 정권이 붕괴를 걱정하는 단계까지 간 것으로 보인다.
격화하는 시위
이란 시위는 격화하고 있다.
국영방송에 따르면 이란 5대 도시인 시라즈와 주변 지역에서 간밤 보안군이 공격을 받아 경찰관 3명이 사망했다.
국영방송은 반정부 시위대가 거리를 장악했다면서 이들을 ‘무장 그룹’이라고 칭했다. 이 무장그룹들이 이슬람 사원을 비롯해 “여러 주의 공공, 민간 시설을 공격해 심각한 손상을 일으켰다”고 국영방송은 보도했다.
시위대에 대해서는 어떤 법적 관용도 없을 것이라고 당국이 경고하고 있지만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동영상들에서는 수도 테헤란에 간밤 군중들이 모여 반정부 구호를 외치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인터넷, 사흘째 차단
동영상 진위가 파악되지 않는 가운데 이란 당국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시위가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흘째 인터넷을 차단했다. 이란 주재 외교관들은 이란 정권이 과거에도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사례가 있어 이번 인터넷 차단이 무력 진압을 위한 사전 조처일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성명에서 이란군은 국내외 세력이 체제 전복을 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테러리스트 그룹들’이 “이란의 공공 안전 약화”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모함마드 모바헤디-아자드 이란 검찰총장은 10일 “이 문제에 있어서는 모든 범죄자들이 (이란의) 적”이라면서 법원에는 관용 없이 신속하게 재판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아울러 시민들에게는 소셜미디어에 관련 내용을 올리는 것도 신중할 것을 경고했다.
정권 반감, 핵심 지지층으로 확대
시위가 지난해 12월 말 촉발된 가운데 지난주 들어 격화하고 있다.
특히 이란 이슬람 정권 핵심 지지층 사이에서도 시위 참가자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영방송은 보안군 여러명이 테헤란에서 8일 목숨을 잃었고, 경찰관 2명은 종교도시 콤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또 남부 슈스타르에서는 보안군 2명이 숨졌다.
국영방송에 따르면 같은 날 북동부 에스파라옌에서는 지방 검사 한 명과 보안군 4명이 ‘폭동 속에’ 살해됐다. 또 이란 혁명수비대와 연계된 민병조직 바시즈 소속 민병대원들 일부도 사망했다고 프레스TV가 10일 보도했다.
프레스TV는 동시에 이란 국립경찰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각 도시가 안정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프레스TV는 “보안 당국의 강력한 경고 뒤 대부분 주에서 시위 군중이나 불안이 목격되지 않고 있다”면서 “다만 공공질서를 해치려는 일부 폭도들의 제한적인 시도만 있을 뿐”이라고 보도했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와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이번 시위로 지난 3일까지 사망한 시위대가 최소 28명이라고 밝혔다.
외국에 본부를 둔 인권활동가통신(HRANA)은 9일 사망자가 보안군 14명을 포함해 모두 65명에 이른다면서 이외에도 많은 이들이 부상을 입고 체포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유럽 외교관계위원회(ECFR)의 엘리 게란마예는 “이번 시위는 유기적인 것으로 아래에서부터의 압박으로 이슬람 공화국 이란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답의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음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게란마예는 “역사적으로 이슬람 공화국 수호의 허리 역할을 하던 사회 계층”에서도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면서 불만이 독버섯처럼 퍼져 과거에 비해 훨씬 커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란 정권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위에서 밑으로 찍어누르는 하향식 압력과 이란 민중들의 정권을 향한 밑에서 위로 치받는 상향식 압력에 모두 노출돼 있다며 사태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란이 발포하면 미국도 발포한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8일 연설에서 시위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위해 행동하고 있다면서 정부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란 정권은 외국 세력과 ‘테러리스트들’이 시위를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만약 이란 정권이 시위대를 사살하면 미국이 ‘구조’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는 이란 지도부에 “당신들은 발포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면서 “우리도 발포하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9일 “이란은 현재 큰 곤경에 처했다”면서 “내 보기에 사람들이 특정 도시들을 장악했다. 이는 불과 수주일 전만 해도 정말 가능할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란은 최근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전격 작전을 지켜본 터라 트럼프의 이런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됐다.
물가 폭등이 민심 폭발로
10일까지 13일째 이어지고 있는 이란 시위는 경제적 곤경, 물가 폭등에서 비롯됐다.
시위를 시작한 것은 뜻밖에도 테헤란 상인들이었다. 이들은 물가 폭등에 항의하며 상점 문을 닫아걸었고, 여기서 시위가 시작됐다.
이 시위는 곧바로 전국 단위 반정부 시위로 확산됐다. 대도시에서 중소도시로, 곧 시골 마을까지 각 주로 들불처럼 번졌다.
경제 재건을 다짐하며 집권한 지 18개월 된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초기에는 시위대를 다독이며 자발적인 해산을 시도했다. 재계 지도자들과 만나 경제적 고충에 대해 논의하고, 중앙은행장도 새로 임명했다. ‘경제적 안정성’을 다시 확보하겠다는 몸짓이었다.
그러나 시위는 외려 격화됐다. 토요일이 휴일인 이슬람 국가의 특성상 주말이 시작된 지난 8일 대규모 군중이 테헤란과 여러 도시들을 장악했다.
이후 당국은 거의 모든 통신을 끊었고, 시위대에 대해 강력히 경고했다.
2022년 ‘히잡 시위’ 이후 가장 심각
이번 시위는 2022년 이른바 ‘히잡 시위’ 이후 가장 심각한 양상이다.
당시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혐의로 당국에 체포된 마 아미니가 사망하자 이란 전국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당국의 무력 진압으로 300명 넘는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당시와 달리 지금은 이란이 경제적으로, 또 군사적으로 더 취약한 상태여서 정권 붕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란은 지난해 6월 이스라엘과 12일에 걸친 전쟁으로 황폐화됐다. 전쟁 기간 이스라엘군은 이란군 지도부와 핵 과학자들을 암살했고, 이란 방공망을 파괴했다. 또 미국과 함께 이란 핵시설도 공습했다.
이후 이란 통화 가치는 거의 반 토막이 났다.
리알화 가치는 6월 전쟁 뒤 40% 넘게 폭락했고, 그 여파로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치솟고 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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