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인공지능(AI) 하드웨어인 텐서처리장치(TPU)와 소프트웨어인 ‘제미나이 3.0’을 앞세워 업계에 새 방향을 제시한 구글이 8년 만에 미국 증시 시가총액 2위 자리를 꿰찼다. 스마트폰 시대에 혁신의 상징으로 통했던 애플은 AI 대응에 실패했다는 평가 속에 7년 만에 기업가치가 구글보다 작아졌다. 구글은 나아가 시총 1위인 엔비디아와의 격차까지 좁히면서 AI 대장주의 입지까지 위협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AI 모델과 반도체, 소비자·기업 플랫폼을 내부적으로 수직 계열화한 회사인 만큼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한국의 개인투자자(서학 개미)들에게도 당분간 최선호주가 될 공산이 커졌다. 엔비디아는 자율주행 AI와 최첨단 반도체까지 선보이며 반전을 노렸지만, 월가의 반응은 아직까지 시큰둥한 상태다.
알파벳, 올 들어 하루 빼고 매일 상승…MS·애플 제치고 시총 4조 달러, 엔비디아 정조준
9일(현지 시간) 뉴욕 증시에서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의 A주는 전 거래일보다 0.96% 오른 328.57달러에 마감했다. 벌써 3거래일 연속 상승세다. 알파벳은 올 들어 0.70% 하락한 6일 제외하고는 매일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의결권이 없는 C주를 합한 알파벳의 전체 시총도 3조 9680억 달러(약 5792조 7900억 원)으로 불어 4조 달러를 눈앞에 두게 됐다. 지금까지 시총 4조 달러를 넘어섰던 종목은 지난해 7월 10일 엔비디아, 7월 31일 마이크로소프트(MS), 10월 28일 애플 등 세 곳밖에 없다.
알파벳의 약진은 지난해 11월 18일 TPU 기반의 제미나이 3.0을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출시 첫날부터 구글 검색엔진에 곧바로 제미나이 3.0을 적용하는 초강수를 두면서 각계의 호평을 받았다. 월가는 무엇보다 구글이 값비싼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에만 의존하던 AI 업계에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데 환호했다. 알파벳은 제미나이 3.0 출시 직후인 같은 달 21일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시총 3위로 도약했다.
알파벳은 ‘AI 거품론’이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지난해 한 해 동안 66.0%나 주가가 상승해 나스닥종합지수 전체 수익률(20.4%)을 압도했다. 39.3%, 8.5%씩 오른 엔비디아나 애플보다도 성과가 좋았다.
알파벳은 급기야 이달 7일 애플까지 제치면서 전 세계 시총 2위 기업이 됐다. 알파벳이 시총 2위 기업으로 된 것은 2018년 2월 26일 이후 8년 만에 처음이었다. 애플보다 시총이 많아진 것도 2019년 1월 29일 이후 7년 만에 최초였다.
알파벳은 이에 멈추지 않고 시총 1위인 엔비디아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알파벳과 달리 올 들어 2일(1.26%)과 7일(1.00%)을 제외하고는 연일 하락하고 있다. 9일에도 나스닥종합지수가 0.82% 상승하고 대다수 기술주가 강세를 보인 가운데 홀로 0.10% 내렸다. 현 시총은 4조 4921억 달러(약 6558조 원)로 알파벳과 5000억 달러도 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6월부터 부동의 시총 1위로 올라섰다. 10월 29일에는 사상 최초로 5조 달러(약 7300조 원)를 돌파해 세계 3위 경제 대국인 독일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규모보다 기업가치가 커지기도 했다. 알파벳이 글로벌 시총 1위 기업 자리에 있었던 것은 10년 전인 2016년 2월이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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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U 기반 제미나이, 자본 효율성으로 GPU와 챗GPT 동시 위협···애플은 ‘스마트폰 회사’로 정체
알파벳의 가치가 이렇게 커지는 것은 구글이 현 AI 관련 기업들 가운데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췄다는 판단 때문이다. 구글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AI 모델과 반도체, 소비자·기업 플랫폼을 내부적으로 모두 수직 계열화하는 데 성공한 회사로 평가받는다. ‘챗GPT’ 운영사인 오픈AI가 과잉 투자 논란 속에 거품론의 중심에 섰다는 점과 비교하면 훨씬 유리한 고지에 섰다는 진단이다.
사실 구글은 챗GPT 출시 직후인 2022년 말만 해도 사내에 ‘적색 경보(코드 레드)’를 발령할 정도로 위기에 몰렸던 회사다. 당시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챗GPT가 구글이 독과점하던 검색엔진 시장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충격을 받았다. 그러다 제미나이를 필두로 챗GPT 기술을 빠르게 따라잡으면서 지난해 12월 초에는 거꾸로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사내에 코드 레드를 발령할 정도로 전세가 역전됐다.
투자자들도 알파벳에 뭉칫돈을 들고 몰리고 있다. 워런 버핏 회장이 아직 현역이던 지난해 3분기 버크셔 해서웨이는 알파벳의 주식을 43억 달러어치 새로 매집해 보유량을 1785만 주로 늘렸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서학 개미들도 구글이 유망 AI 기업으로 뜨자 지난해 1년 동안 알파벳을 전체 미국 주식 가운데 가장 많은 6억 454만 달러(약 8825억 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올 들어 9일까지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단일 종목 가운데 테슬라(4억 2257만 달러), 마이크론(1억 7689만 달러) 다음으로 많은 1억 1334만 달러어치를 순매수했다.
알파벳과 달리 애플은 AI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거대 기술 기업(빅테크)으로 전락했다. 애플은 당초 지난해 AI 비서 서비스인 차세대 ‘시리(Siri)’를 출시하려다 그 시기를 올해로 연기했다. 2011년부터 애플을 이끌고 있는 팀 쿡 CEO는 교체설에도 휩싸였다.
애플은 그나마 아이폰 시리즈가 아직까지 판매 호조를 보이는 점으로 주가를 지탱하는 형국이다. 애플이 지난해 9월 19일 전 세계에 선보인 ‘아이폰 17’은 출시 초기부터 흥행에 성공하며 경쟁사와 차이를 보였다.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아이폰 17의 지난해 9~10월 누적 판매량은 전작인 아이폰 16의 2024년 9~10월 판매량보다 18%나 많았다. AI 시대에 아직도 스마트폰을 가장 비싸게, 많이 파는 회사로만 남아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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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은 자율주행 AI ‘알파마요’로 새 도전···머스크 “5~6년 더 걸릴 것”
엔비디아가 구글의 거센 추격을 받는 가운데 젠슨 황 CEO는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인 ‘CES 2026’에서 자율주행 AI 모델인 ‘알파마요’를 선보이며 새로운 도전을 선포했다. 기존 협력 회사인 메르세데스벤츠는 물론 추후 한국의현대차(005380)에도 적용될 수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국내 언론도 이 기술을 크게 조명했다.
황 CEO는 5일 CES가 열린 라스베이거스에서 알파마요를 공개하고 이 기술을 올해 미국 시장부터 적용하기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이 기술을 토대로 3년 뒤에는 전 세계 모든 차량에 ‘레벨4(일정 구간에서 완전 자율주행)’ 운행을 가능하게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알파마요는 자동차 개발사와 연구진이 자유롭게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도록 개방형 생태계로 구축됐다. 차량에 직접 탑재돼 구동되는 다른 자율주행 모델들과는 이 점에서 다르다.
알파마요의 가장 큰 특징은 안전에 주안점을 두고 추론 기반으로 차세대 자율주행차 개발을 유도한다는 점이다. 현재 자율주행 택시 시장을 선도하는 구글 웨이모나 테슬라 로보택시의 경우 반복적으로 학습한 라이다(센서), 카메라를 통해 주변을 인식하는 방법을 쓴다. 이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돌발 상황에서 오작동을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
황 CEO는 이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단계별 사고와 추론에 기반한 업계 최초의 ‘비전 언어행동(VLA)’ 모델을 고안했다고 설명했다. 이 모델에서는 AI가 그간 학습하지 못한 상황과 마주하면 추론을 거쳐 행동한다. 전방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가 보이면 우회전이 낫다고 판단하거나 공이 도로에 굴러오면 아이가 따라올 가능성에 대비해 멈추는 식이다. 황 CEO는 “피지컬 AI(AI와 물리적 세계를 결합한 기술)의 챗GPT 시대가 도래했다”며 “알파마요를 탑재한 메르세데스벤츠 CLA가 올 1분기에 미국에서 먼저 출시되고 2∼3분기에는 유럽과 아시아 시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CNBC는 이날 “엔비디아는 2028년까지 일반 승용차가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자율주행 기능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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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칩 ‘베라 루빈’ 조기 공개하고 정의선 만났지만 주가는 더 하락···새해에도 기술 경쟁이 판가름
엔비디아가 자율주행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음에도 기존 선두 업체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는 짐짓 여유로운 반응을 보였다. 테슬라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AI 칩과 플랫폼으로 감독형 완전자율주행(FSD)과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만들고 있다. 각 완전차 업체가 엔비디아와 동맹을 맺고 자율주행 차량을 제조할 경우 테슬라는 일정 부분 관련 시장을 내줘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머스크 CEO는 같은 날 X(옛 트위터)의 알파마요 관련 게시물에 답글을 달고 “자율주행이 어느 정도 작동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인간보다 훨씬 안전한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몇 년이 걸린다”며 “기존의 자동차 회사들은 몇 년이 지나도 카메라와 AI 컴퓨터를 차량에 대규모로 설계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테슬라에 대한 경쟁 압박은 5∼6년 뒤에나 있을 수 있지만, 아마도 더 오래 걸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머스크 CEO는 또 다른 알파마요 관련 게시물 답글에서도 “그들(엔비디아 등)은 99%까지 도달하기는 쉽겠지만, 그 이상의 정밀 기술을 해결하기는 엄청나게 어려울 것”이라고 썼다.
황 CEO는 아울러 5일 ‘그레이스 블랙웰(GB)’을 잇는 차세대 최첨단 칩 ‘베라 루빈’도 조기 공개했다. 구글과 AMD, 아마존 등 경쟁 기업과의 격차를 유지하고 있음을 선제적으로 뽐냈다. 베라 루빈은 CPU ‘베라’ 36개와 ‘루빈’ 72개로 구성된 AI 가속기다. 블랙웰 기반 제품과 비교해 추론 성능이 5배에 달하고 토큰당 비용은 10분의 1 수준으로 낮췄다. 모델 훈련에 필요한 GPU 수도 4분의 1로 줄였다. 황 CEO는 베라 루빈이 100% 수랭식 냉각을 지원하기에 45도의 뜨거운 물로도 냉각할 수 있게 설계됐다고 강조했다. 데이터센터 전력난이 최대 난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나름 이를 완화할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황 CEO는 나아가 베라 루빈이 이미 양산 단계에 돌입했고 올 하반기에는 루빈 기반의 또 다른 신제품도 출시할 것이라며 “우리는 단 1년도 뒤지지 않고 매년 컴퓨팅 기술 수준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황 CEO는 6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전격 회동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30일 이재용삼성전자(005930) 회장과 세 명이서 서울 삼성동의 한 치킨집에서 함께 맥주를 마신 이른바 ‘깐부 치맥(치킨과 맥주) 회동’ 이후 두 달여 만이었다. 황 CEO와 정 회장은 이날 30분간 마주하면서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새로운 사업 진출 분야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CEO가 CES에서 나름 혁신적인 청사진을 내놓았음에도 엔비디아의 주가는 외려 하락했다. 엔비디아는 알파마요와 베라 루빈을 선보인 5일 0.36% 내리고 황 CEO가 정 회장과 만난 6일에는 0.47% 더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알파마요의 파급력을 아직 확신하지 못하는 뜻이었다.
제미나이 3.0이 나온 지난해 11월 이후 알파벳과 엔비디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가 다른 흐름을 보이면서 올 한 해에도 시총 상위권 다툼이 치열하게 펼쳐질 가능성이 커졌다. 자고 일어나면 신기술이 변화하는 세상이 된 만큼 앞으로 기술 격차가 곧 시총의 서열로 직결되는 냉혹한 ‘AI 서바이벌’ 시대가 가속화하고 있다.
※'트럼프 스톡커(Stocker)'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투자에 도움이 될 만한 미국의 시장·기업·정책·정치·외교 관련 현장 이야기와 현안 분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구독하시면 유익한 미국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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