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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세가 환영받는 베네수엘라의 아이러니[생생확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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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두로 체포에 카라카스 거리엔 폭죽·환호
경제 붕괴에 전체 인구 4분의 1 망명 떠나
"미국 불신…하지만 자국 정치인은 더 불신"
외세 개입 부른 건 결국 내부 정치의 실패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대통령을 외국 군대가 체포해 끌고 갔는데 거리에서는 폭죽이 터졌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베네수엘라 국민이 보여준 이 장면들은 외세 개입의 역설을 보여준다. 문제는 환호가 아니라, 국민이 환호할 수밖에 없게 만든 정치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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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에 거주하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2026년 1월 3일(현지시간) 콜롬비아 보고타의 볼리바르 광장에 모여 베네수엘라 국기를 들고 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공격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그의 부인 실리아 플로레스를 생포했다고 밝힌 뒤 이를 축하하기 위해서다. (사진=로이터)


카라카스 광장의 한 여성은 BBC 인터뷰에서 “미국이 마두로를 데려가 줘서 고맙다. 처음으로 희망을 본다”고 말했다. 같은 기사에서 다른 시민은 “이건 납치지만,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건 마두로 정권”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서 ‘해방감’과 ‘수치심’을 모두 느낄 수 있다.

마두로 체제 13년 동안 베네수엘라 경제는 붕괴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1년까지 베네수엘라 국내총생산(GDP)은 75% 줄었다. 유엔난민기구는 800만명이 나라를 떠났다고 집계했다.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망명길에 올랐다. NPR이 인터뷰한 카라카스 상점주는 “내 가족의 80%가 해외에 있다”며 “이제 희망을 품어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물론 환호만 있는 건 아니었다. NPR은 수도 친정부 지역에서 “마두로는 여전히 우리의 대통령”이라는 현수막을 든 시위대를 만나기도 했다. 한 시위 참가자는 “오늘 베네수엘라에 한 일을 내일 다른 나라에도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카라카스의 한 교사는 BBC에 “밖에서는 환호와 분노가 맞서고, 나는 그냥 창문을 닫고 아이들을 돌본다”고 했다. 환호와 공포 사이에 침묵하는 다수가 있다.

미국 마이애미의 베네수엘라 교민들은 “두 번째 독립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NBC가 전했다. 반면 본토의 한 청년은 BBC에 “마두로가 떠나서 기쁘지만, 미국이 우리를 운영(run)하겠다는 말은 두렵다”고 말했다. 같은 사건이 디아스포라(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에는 해방이지만, 본토에는 새로운 불안이다.

BBC가 인용한 한 노인의 말은 핵심을 찌른다. “나는 미국을 신뢰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정치인들은 더 신뢰하지 않는다.” 외세를 믿어서가 아니라, 자국 정치에 대한 절망 때문에 외세를 ‘차악’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베네수엘라에서 변호사로 일했던 라울 산체스 우리바리 호주 라트로브대 교수는 지난달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우고 차베스 정권 때부터 작은 개입이 반복·축적되면서 민주주의가 서서히 무너졌다. 저는 이것을 ‘천 개의 상처에 따른 사망’이라고 부른다”며 “그 모습을 지켜보는 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이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군사 개입 자체의 정당성 논란은 차치하고, 외세 개입을 부른 것은 외세의 힘만이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거리에서 쏟아진 환호는 미국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자국 정치에 대한 깊은 실망의 반작용이다. 대통령을 외국 군대가 체포했는데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는 베네수엘라 국민의 복잡한 감정 속에 정치가 시민에게 남긴 선택지가 얼마나 좁아졌는지를 보여준다. 외세 개입의 문을 여는 것은 언제나 외부의 힘이 아니라 내부 정치의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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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2026년 1월 3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를 공습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그의 부인 실리아 플로레스를 생포하자 칠레에 거주하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축하 집회를 연 가운데, 칠레 콘셉시온에서 한 여성이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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